크라운 외환

마지막 업데이트: 2022년 4월 7일 | 0개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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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과자 프로젝트'가 담긴 죠리퐁(좌)과 쟈뎅 콜라보 제품(우). /사진=크라운해태

크라운 외환

체코진출 외국기업, 과실송금보다 재투자 선호

- 외국인 투자액의 2/3 차지, R&D 및 서비스부문 중심 -

□ 크라운화 강세에 따른 외환수익 증가, 2007년 재투자 수익금이 과실송금액 앞질러

○ 체코 경제의 지속적 성장으로 현지에 진출한 외국기업들은 상당한 투자수익을 향유하고 있으며, 특히 크라운화의 강세에 따른 환차에 의한 외환수익의 확대로 외국 투자자에게 엄청난 규모의 배당금이 지급되고 있으나, 외국기업들은 배당금 지급받기보다는 수익의 상당부분을 재투자하여 사업을 확장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음.

○ 이동통신 사업자인 Telefonica O2 사에 투자한 Telefonica Spain 사는 총 161억 크라운(US$ 9억3500만)의 배당금을 받았으며, Skoda 자동차에 100% 투자한 독일의 VW그룹도 71억크라운(U$ 4억1300만)을 받는 등 대부분의 투자기업들이 성공을 거두고 있음.

○ 외국투자가에 대한 배당금은 2002년도에 총 327억 크라운 수준이었으나 2007년도에는 1080억 크라운으로 3배 이상 증가했으며, 2009년에는 1500억 크라운에 달할 것으로 현지 Raiffeisenbank의 금융전문가인 Ales Michl은 분석하고 있음. 특히 2007년도에는 수익금의 재투자가 배당금보다 약 200억 크라운 정도 많았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수익금 재투자 규모가 2009년에는 총 1440억 크라운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음.

○ 지난 2~3년간 체코 기업의 민영화가 거의 마무리됨에 따라 외국자본의 신규 유입은 안정세를 보이고 있는 반면, 경제의 안정적 성장과 더불어 사업기회는 지속 확대되고 있어, 기업가들의 입장에서는 수익금의 재투자를 통한 사업확장이 자연스런 전략임으로 앞으로는 외국인 투자의 주력이 재투자가 될 것이 확실시 되고 있음.

□ 외국인 투자, 사업확장 투자 및 수익금 재투자 위주로 전환

○ CzechInvest에 따르면 체코내 외국인 투자가 2006년부터 재투자 중심으로 전환되고 있으며, 2007년도에는 신규투자 프로젝트의 71%가 기존 투자가의 확장투자였음. 투자진출분야도 신규분야보다는 기 투자분야의 R&D 및 서비스부문이 중심이 되고 있으며, 2008년도 상반기중 CzrchInvest가 지원한 124개 투자 프로젝트 중 2/3가 이 부문이었음.

○ 이러한 추세의 대표적인 사례로 IBM이 9월 초에 자사의 중부유럽 본부를 프라하에 설립하겠다고 발표한 것을 들 수 있는데, 이는 전 세계적으로 성장시장에 총 16억 달러를 투자하겠다는 IBM 본사의 투자전략의 일환이지만, 체코시장에 대한 높은 국제적 신뢰도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음.

○ 외국기업의 수익금 재투자 동향을 보면 2006년 38억6000만 달러 수준에서 2007년에는 64억3000만 달러로 무력 67%나 증가했으며, 금년도 상반기에도 37억 달러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음.

- 이에 반해 외국자본의 신규유입을 나타내는 설립 자본금 투자규모는 2006년 18억8000만 달러, 2007년 28억3000만 달러 그리고 올 상반기 중 15억5000만달러로 재투자 수익금의 절반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음.

○ 올 상반기 중 수익금의 재투자가 활발하게 이뤄진 분야는 금융부문이 총 7억7000만달러로 가장 많으며 판매유통분야가 6억8000만 달러, 부동산 및 사업서비스분야가 3억 달러 순이었음. 제조업분야에서는 운송기기부문 2억4000만달러, 기계공학부문 2억2000만달러, 금속산업부문이 1억4000만달러 순으로 나타나 체코의 주요 산업 전반에 걸처 사업확장 투자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음.

□ 아이랜드와 유사한 패턴으로 산업구조 변화, 현재 2단계 진행 중

○ CzechInvest 청장인 Ms. Rudysarova는 외국 선진기업들의 R&D 및 서비스분야로의 진출 확대는 이들의 경험과 노하우가 자국내 기업에 전파돼 궁극적으로는 체코기업들의 성장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체코의 산업구조 변화패턴이 아일랜드와 유사한 과정을 거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음.

○ 아일랜드의 경우, 초기에는 외국기업들의 제조업 분야 투자진출이 급속도로 확산됐으며, 두번째 단계인 이들 외국기업들의 서비스 및 R&D 분야 투자확대기를 거처 지금은 마지막 세번째 단계인 순수 자국기업들의 등장 및 성장단계를 거치고 있다고 언급하면서, 체코가 현재 두번째 단계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음.

○ 체코 정부도 2007년도 하반기부터 일반 제조업 분야에 대한 투자지원 범위를 축소하고 R&D 및 서비스 센터 등 고부가가치 산업부문의 투자지원을 확대하는 정책을 추진하여 자국산업의 구조변화를 유도하고 있음. Ms.Rudysarova 는 현재의 R&D 및 서비스 부문에 대한 투자증가 추세가 이어진다면 체코에 대한 국제적 인식도 빠르게 변할 것이라고 언급함.

○ 유럽시장을 목표로 하는 우리기업들의 경우, 체코의 투자환경 및 투자정책의 변화추이에 맞춰 지금까지의 제조업 중심의 단독 투자진출 전략에서 현지기업과의 상호렵력, 지분참여 등의 방법으로 물류 및 서비스 분야로의 진출도 신중히 검토해야 할 시기에 도달임.

○ 특히 체코가 강점을 가지고 있는 기계공학이나 소프트웨어분야, 그리고 국제적 기업들의 R&D 센터가 들어서고 있는 바이오 및 의약분야에서의 유럽시장 기반확보를 위해서는 지리적 위치뿐만 아니라 관련 산업기반이 상대적으로 잘 갖춰진 체코시장의 중요성을 인지해 M&A를 통한 현지 유력중소기업의 확보 또는 공동연구 및 기술협력 등 다양한 진출전략을 구사할 필요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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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동산, 브라보콘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해태제과가 오랜만에 빚을 늘린다고 합니다. 간과되고 있는 의미가 있는데요. 에서 해태제과의 '증권신고서'를 통해 그 의미를 해석해 봅니다.

· 해태제과식품(해태제과)이 6월2일 확정된 증권신고서를 공시했어요. 720억원 어치 회사채를 발행한다는 게 공시의 요지인데요.

해태제과식품이 공시한 회사채 발행 증권신고서

· 당초 해태제과는 500억원 규모의 회사채 수요 여부를 기관투자가를 상대로 타진했는데, 시장의 수요가 예상보다 많아 이번에 증액발행하기로 확정한 것이죠. 발행 금리는 4% 중후반이 될 것 같은데요. 시장 수요가 많았던(오버 부킹) 이유도 매력적인 금리와 더불어 과거보다 나아진 해태제과의 재무상태에 기관투자가들이 매력을 느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 그런데 짚고 넘어갈 점이 하나 있습니다. 500억원에서 720억원으로 증액발행을 하는 이유가 운영자금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라고 밝히고 있다는 점입니다. 500억원을 기존 빚을 갚는데 사용하고 추가로 220억원의 빚을 더 내겠다는 건데요. 해태제과가 참 오랜만에 빚을 기존보다 더 늘리는 거에요.

👉해태제과는 어떤 회사?

· 우리나라에는 크고 작은 과자 회사가 참 많습니다. 해태제과도 그 중 한 곳인데요. 농심, 롯데제과, 오리온, 크라운제과, 청우식품, 빙그레, 삼양식품, 미가방, 오뚜기, 코스모스제과, 국제제과, 삼광식품, 훼미리식품 등 비교적 규모가 큰 회사부터 중소규모 기업까지 수백여개 회사가 있어요.

· 해태제과는 그 중 독특한 이력을 가진 기업으로 유명합니다. 한때는 호남 지역을 연고로 성장한, 제과업계의 ‘기린아’였죠. 수십개의 계열사(해태음료, 해태유통, 해태상사, 해태산업, 해태전자, 해태중공업 등)를 거느렸고 특히 타이거즈 프로야구단을 운영하는 구단주였지만 1997년 외환위기 파고를 견디지 못하고 공중분해되었죠. 채권단 관리를 거쳐 2005년 크라운제과에 팔렸고 지금도 크라운해태홀딩스가 대주주로 있는 곳입니다.

[서경이 만난 사람] 윤영달 크라운해태제과그룹 회장

소비자들을 입을 즐겁게 하는 새로운 과자를 만들어 내는 데 심혈을 기울여야 할 과자회사가 국악과 조각, 시에 심취해 있다고 하니 말이다.

이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지난 13일 경기도 양주시에 위치한 크라운해태제과의 문화예술 테마파크 송추아트밸리에서 윤영달 크라운해태제과그룹 회장을 만났다. 윤 회장은 1주일에 사나흘은 이곳에 머물면서 내년 1월 크라운 외환 오픈할 계획인 '양주 스노우페스티벌' 공사현장을 직접 챙기느라 분주했다. '제1회 양주 스노우페스티벌'은 일본 삿포로, 중국 하얼빈의 해외 눈축제를 벤치마킹해 눈이 귀한 한국에서 신명 나는 눈축제를 벌여보자는 의도로 기획됐다.

이날도 직원들은 팀별로 이 곳을 찾아 '스노우페스티벌'에 선보일 1,000개의 눈 떼 조각품을 만들기 위한 준비작업이 한창이었다. 스티로폼을 가져다 조각을 만드는 연습을 하는 등 쌀쌀한 날씨에도 사뭇 진지한 모습으로 팀워크를 발휘하고 있었다.

윤 회장은 '스노우페스티벌'을 찾는 고객들에게 1,000개의 눈 조각품을 선보여 즐거움을 주는 것은 물론 궁극적으로는 눈 조각품을 만드는 노하우를 전수 받은 직원들이 자신이 속한 지역 커뮤니티에서 눈 조각을 만들어 동네축제로 승화시킬 수 있기를 꿈꾸고 있다.

그는 "눈 조각을 만들기 위해 눈 모으는 기계를 직원들에게 빌려주고 동네 아파트에서 눈 조각을 만들면서 다른 이웃도 동참시켜 전국적인 축제로 확산시키고 싶은 게 내 꿈"이라며 "재미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과자가 더 잘 팔리지 않겠느냐"며 웃었다.

윤 회장의 꿈은 더욱 원대하다. 5년 후 열릴 예정인 평창동계올림픽 때 전국민 1만명이 모여 거대한 눈 떼 조각을 만드는 전국민 축제를 벌이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렇듯 윤 회장은 아트경영을 펼치는 최고경영자(CEO)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다.

직원들과 함께 판소리를 배우고 2007년에는 아예 민간기업으로는 처음으로 락음국악단까지 창단해 운영하고 있다. 매년 국내 최정상 국악 명인들이 한 무대에 서는 '대보름 명인전'과 대한민국의 국악 발전을 위해 퓨전국악공연인 '창신제'도 개최한다.

지난달에는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된 아리랑을 널리 알리기 위해 전국 100개 영업소의 영업사원과 소매점주, 지역 관계자 등 총 2,000명이 참여한 '제1회 아리랑페스티벌'을 성공리에 크라운 외환 마쳤다. 윤 회장이 먼저 서울시에 제안해 서울시와 공동으로 주최한 이 축제는 서울 광화문광장과 서울광장에서 사흘 동안 국악과 길놀이 등을 펼쳤다.

하지만 그는 "아트경영은 '메세나'가 아니라 '마케팅'"크라운 외환 이라고 잘라 말했다. 저출산 현상과 장기불황에다 웰빙 열풍까지 불면서 성숙기에 이른 국내 제과 시장에서 성장을 위한 돌파구로 그는 예술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직원들이 아트경영에 참여하면서 즐거워지면 더 좋은 과자를 만들게 되고, 또 아트경영의 산물을 1차 고객인 도소매 점주들에게 보여주면서 환심을 사는 마케팅"이라는 게 윤 회장의 설명이지만 다시 말하면 협력업체와의 파트너십 강화, 즉 상생전략인 셈이다.

"과자는 충동구매 상품, 저관여 상품입니다. 구매 전 리스트를 작성해 계획적으로 사기보다는 매대에서 보이는 제품을 집는 경향이 크지요. 국내 제과업계의 품질이나 마케팅은 대동소이합니다. 결국 회사에 대한 고객충성도가 높지 않기 때문에 진열매대가 마케팅의 핵심 포인트죠. 즉 진열 위치를 결정하는 사람의 파워가 가장 중요한데 점주에게 점수를 얻어야 좋은 자리를 확보하지 않겠습니까."

직원들이 근무시간에 조각품을 만들고 판소리를 연습한다고 하니 주(아트)와 객(제과)이 전도된 것 같다고 생각한 지 10분도 채 안 돼 윤 회장의 아트마케팅에 대한 열정에 녹아들었다.

그는 아트가 업무 몰입도를 극대화시킨다는 '윤영달 아트이론'을 제시했다. "근무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잡념에 빠지기 일쑤인데 판소리를 배우고 조각하고 시 쓰는 데 시간을 쓰다 보면 정작 일을 할 때는 전념해야 업무를 끝낼 수 있기 때문에 훨씬 더 집중하게 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실제로 수익성도 향상됐다. 올 상반기 크라운해태제과의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 증가해 감소세를 보인 경쟁사들과 대조적이다.

윤 회장이 아트경영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 모기업인 크라운제과가 부도를 내면서 정신이 피폐해져 있을 때 대금ㆍ소금을 통해 국악을 접하게 되면서다. 그 후 고객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 국악공연을 생각해냈고 그렇게 탄생한 것이 2004년부터 시작한 창신제 공연이다. 올해로 개최한 지 10년째인 창신제는 이제 국내 문화계에서 유명한 행사로 자리잡았다. 전문 소리꾼이 아닌 임직원 100명이 무대에 올라 북을 크라운 외환 두드리며 '사철가'를 떼창하는 광경은 서양 종교음악의 대합창처럼 우리 소리도 장엄한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냈다고 평가 받고 있다. "이제는 점주들에게 창신제 표를 안 주면 난리가 납니다. 표를 많이 받기 위해서는 우리 과자를 많이 팔아야 하는 거죠. 송추아트밸리에서도 '고객에게 국악의 향기를(고국향)'이라는 국악행사를 1년에 20~30차례 하는데 연간 8,000명의 고객들이 이곳을 다녀갑니다."

크라운제과가 부도를 이겨낸 후 2005년 해태제과를 인수할 때도 아트경영이 위력을 발휘했다. 해태제과 노동조합이 피인수에 반발하며 크라운제과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을 벌이는 등 내분이 깊던 시기에 감정의 골이 깊어진 두 회사 직원들을 융합하기 위해 끌어낸 것이 미술 공부였다. 그는 "버려지는 과자상자와 포장지로 구조물을 만드는 '박스아트'를 두 회사 영업사원들에게 가르치면서 화학적 융합을 이뤘다"고 설명했다. 크라운해태제과는 전국 대형마트와 슈퍼마켓에 박스아트 작품을 설치하는 이벤트를 연간 5,000회 이상 열고 있는데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대형마트 매출이 매년 15% 이상 성장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게 윤 회장의 설명이다.

윤 회장의 아트경영은 국악에서 시작해 조각, 시로 반경을 넓혀갔다. 과자도 조각품이라고 생각하는 그는 과자에 아트를 접목시켰더니 실제로 매출이 오른 사례들을 열거했다.

"'오예스' 포장에 심명보 작가의 '백만송이 장미'를 그려넣어 단순히 제품 진열만으로도 예술작품을 만들어냈지요. 이어 밋밋한 과자였던 비스킷 '쿠크다스'에 초콜릿으로 물결 모양의 동세를 주었더니 매출이 2배가량 뛰어올랐어요. 과자에 살짝 조각을 했을 뿐인데 소비자들이 이렇게 반응한 것을 보면 역시 예술적인 감성이 중요한 것 같아 과자에 아트를 접목시키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연구 중입니다."

크라운해태제과는 최근 새롭게 문을 연 국립현대미술관과 손잡고 '아트 초콜릿' 제품에도 뛰어들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정형민 관장이 초콜릿으로 만든 청자, 백자를 갑작스레 요청해와 아트 초콜릿으로 탄생하게 된 것. 윤 회장은 "그동안 직원들의 아트경영지수(AQ)가 축적된 덕분"이라며 "이 제품은 국립현대미술관의 아트숍에서 판매하게 되며 앞으로 서울시립미술관 등 다른 미술관ㆍ박물관 등과도 아트 초콜릿을 만들어 아트숍 판매는 물론 면세점에까지 판매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제과산업이 정체기로 들어선 지금 신성장동력을 찾는 것도 윤 회장의 고민거리 중 하나다. 과자는 이제 즐거움을 주는 데서 더 나아가 기능성을 첨가한 식품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게 윤 회장의 구상이다. 이를 위해 얼마 전부터 기능성 과자를 염두에 두고 간에 좋다는 헛개나무와 엉거퀴를 송추아트밸리에 심고 연구개발에 들어갔다. 조만간 서울 본사에 있는 연구소도 송추아트밸리로 이전할 예정이다.

"과자에 들어가는 원재료가 비만ㆍ당뇨 등 각종 성인병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잖아요. 이제는 소비자들이 과자를 건강하게 즐길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입니다. 헛개나무와 엉겅퀴에서 나오는 간 보호성분을 추출해 과자에 접목시켜 성인용 과자 시장을 겨냥할 생각입니다. 술 한잔 먹고 과자 하나 먹을까 하는 재미있고도 있을 법한 세상을 꿈꾸고 있는 거죠."

그동안 윤 회장의 경영철학은 고객감동이었는데 최근 들어 '고객행복'으로 바꿨다. 그는 "행복은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감동, 즐거움, 재미 같은 기분 좋은 느낌이 자주 반복되는 것이고 결국 제과업계가 나아갈 길은 엔돌핀을 주는 과자를 매개체로 삼아 직원과 고객에게 행복을 선사하는 것"이라며 "준비 중인 '스노우페스티벌'로 전국민에게 행복을 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 윤 회장은 '죠리퐁' 개발한 한국 과자업계 대부

윤영달 크라운해태제과그룹 회장은 한국 과자업계의 대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크라운해태그룹의 뿌리인 크라운제과는 선친인 윤태현 창업주가 크라운 외환 1947년 서울역 뒤편에 세운 영일당제과에서 출발해 1968년 크라운제과로 법인전환했다. 크라운제과는 1961년 크라운 산도를 내놓으며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당시 1년간 국민 한사람이 50개씩 소비하며 과자와 관련된 통계를 모두 바꿔놓은 역사적인 상품으로 기록됐다.

윤 회장은 23세이던 1969년 크라운제과에 입사해 1971년 회사 경영에 처음 참여했다. 상무로 재직 중이던 1972년 미국에 갔을 때 먹었던 시리얼을 벤치마킹해 '죠리퐁'을 개발해냈다. 당시 한국에는 영양간식이 없다는 점을 통탄하며 뻥튀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사무실에 뻥튀기 기계를 갖다 놓고 옥수수ㆍ보리ㆍ쌀 등 각종 곡물을 직접 튀겨봤다. 그러던 중 영양은 덜 파괴되면서 당도도 있는 밀맥을 찾아내 '죠리퐁'을 출시했고 당시 우유와 함께 식사대용식으로 통할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윤 회장은 그 이후부터 여러 가지 불패 신화를 창조해냈다. 현재 제조업체가 직접 소매상에 제품을 공급하는 '루트영업'을 처음 시도한 인물이 윤 회장이다. 1970년대 당시에는 과자를 만들어 시장 상인에게 공급하는 도매상 체제였는데 방산시장을 우연히 찾은 윤 회장은 크라운제과의 산도가 한구석에서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이 같은 도매상 체제로는 당시 해태제과 등 골리앗들과 겨뤄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다. 대졸 영업사원 20명을 데리고 도매상의 영향이 덜한 전주 지역으로 내려간 그는 지게에 제품을 싣고 슈퍼마켓 소매상인들에게 직접 배달하는 루트영업을 시작했다. 윤 회장은 개척한 이 같은 영업방식은 현재 제과는 물론 생활용품ㆍ식품업체들에 두루 확산돼 있다.

2005년에는 몸집이 작은 크라운제과가 덩치 큰 해태제과를 인수하면서 통 큰 경영자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크라운제과는 외환위기 여파로 1998년 부도 이후 2004년까지 사적화의를 유지해오다 이를 벗어나는 동시에 해태제과 인수에 뛰어들었다.

[결정적 한끗]②죠리퐁, '3가지 벽'을 넘어서다

저품질 스낵 편견 ‘품질’로 뛰어넘어
경쟁제품 등장하자 ‘종이 스푼’ 맞불
'콜라보' 등으로 브랜드 노후화 극복

/그래픽=비즈니스워치

역사적인 사건에는 반드시 결정적인 순간이 있습니다. 그 순간 어떤 선택을 했느냐에 따라 역사책의 내용이 바뀌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은 꼭 역사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늘 우리 곁에서 사랑받고 있는 많은 제품들에도 결정적인 '한 끗'이 있습니다. 그 한 끗 차이가 제품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비즈니스워치는 소비자들에게 큰 크라운 외환 인기를 끌고 있는 제품들에 숨겨져 있는 그 한 끗을 알아봤습니다. 지금 여러분 곁에 있는 제품의 전부를, 성공 비밀을 함께 찾아보시죠. [편집자]

한 제품이 인기가 영원하기는 어렵습니다. 경쟁사가 비슷한 제품을 쏟아내며 '원조'의 위상이 흔들리니까요. 단, 과자는 예외입니다. 서로 다른 개성을 가진 제품이 수십 년간 판매되고 있습니다. 표준을 정하기 힘든 '입맛'을 공략하는 제품이기 때문일 겁니다. 죠리퐁이 그런 제품입니다. 큰 변화 없이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죠. 하지만 이런 죠리퐁도 난관이 있었습니다. 죠리퐁이 넘어선 세 개의 '벽'을 소개합니다.

소비자들의 '동경'을 마케팅하다

죠리퐁이 출시됐던 1972년 당시 스낵은 소비자들에게 생소했습니다. '한국인은 밥심'이라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저품질 양산형 제품이 대부분이었던 스낵에 대한 불신도 컸고요. 때문에 많은 기업들이 기술·인프라에 투자하면서까지 스낵 시장에 뛰어들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당시는 경제 부흥에 집중하던 시기였습니다. 먹어도 배부르지 않은 스낵은 사치품이었습니다.

죠리퐁도 특별한 제품은 아니었습니다. 소비자들은 죠리퐁과 같은 '퍼핑 스낵'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뻥튀기와 비슷했으니까요. 설상가상으로 죠리퐁은 비쌌습니다. 경쟁 스낵류에 비해 두 배 가량 가격이 높았습니다. 당시 최고급 비스킷이었던 같은 회사의 산도보다도 비쌌습니다. 자연스럽게 출시 초기 죠리퐁은 시장에서 외면받았습니다.

양산형 과자를 비판하는 1972년 신문보도(좌)와 크라운제과의 매출 1000억 돌파를 다룬 1984년 보도. /사진=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윤영달 크라운제과 상무(현 크라운해태제과 회장)는 죠리퐁을 '선진국형 스낵'으로 마케팅합니다. 죠리퐁을 먹으면 동경하는 '미국식 라이프 스타일'을 즐길 수 있다고 강조한 겁니다. 첫 유통 경로도 서울 용산 주한 미군 기지였습니다. 윤 상무가 직접 용산 근처 슈퍼마켓들을 돌며 죠리퐁의 장점을 적극 어필했습니다. 덕분에 죠리퐁이 드디어 용산 미군 기지 근처 매장에 입성합니다.

그의 전략은 적중했습니다. 얼마지나지 않아 죠리퐁은 주한 미군과 그 가족들의 '최애템'이 됩니다. 죠리퐁의 가격은 당시 200원대였던 미국산 씨리얼의 4분의 1에 불과했습니다. 그럼에도 만족감은 씨리얼과 비슷했죠. 이들은 죠리퐁에 열광합니다. 죠리퐁이 '미국 사람'들에게 통한 겁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죠리퐁은 순식간에 동이 납니다. 도매상들이 공장에 줄을 서서 죠리퐁 생산만 기다렸죠.

'혁신'으로 제친 라이벌

하지만 영광의 시간은 짧았습니다. 출시 이듬해 품질에 문제가 생깁니다. 죠리퐁은 밀쌀에 단맛을 입힌 제품입니다. 건조가 생명이죠. 당시 건조 과정은 기술적 한계 탓에 수동으로 진행됐습니다. 여기서 사달이 납니다. 장마철이 오면서 습기 탓에 낱알이 서로 달라붙어 굳어버립니다. 더위에 당밀이 녹아내리기도 했습니다. 죠리퐁 특유의 식감을 살릴 수 없게 됐습니다. 결국 여름철에는 죠리퐁 생산을 줄여야했습니다.

이 문제는 1978년 자동건조기가 도입되며 해결됩니다. 하지만 그 사이 죠리퐁에 대한 소비자 불만도 높아졌죠. 표면이 거칠어 식감이 좋지 않다는 클레임이 이어집니다. 이에 크라운제과는 분당(설탕)을 뿌리던 제조 방식을 당액을 코팅하는 방식으로 바꿉니다. 우리가 알고있는 죠리퐁은 이렇게 완성됐습니다. 이후 죠리퐁은 전성기를 맞습니다. 매년 판매량이 상승곡선을 그리며 최고 히트제품 자리에 등극합니다.

/그래픽=김용민 기자 [email protected]

죠리퐁의 두 번째 위기는 1980년대 후반이었습니다. 경제 상황이 나아지자 죠리퐁의 '원조 제품'인 씨리얼이 국내에 상륙합니다. 1988년 농심이 켈로그와 손잡고 '콘푸로스트'를 내놓습니다. 몇 년 후에는 동서식품이 '콘푸라이트'를 출시했죠. 소비자는 죠리퐁과는 또 다른 재미가 있는 이 제품에 관심을 갖습니다. 죠리퐁이 출시 이후 처음으로 제대로 된 라이벌을 마주하는 순간이었습니다.

크라운제과는 '맞불'을 놓습니다. 1995년부터 죠리퐁에 종이스푼을 넣습니다. 이듬해에는 커피맛 '죠리퐁 라이트'를 출시하며 라인업을 늘립니다. 덕분에 죠리퐁의 매출은 증가하면서 1998년 누적 3000억원을 넘어섭니다. 크라운제과는 이런 핵심 제품의 성공에 힘입어 외환위기임에도 제과 사업을 지켜냅니다. 2005년에는 덩치가 더 컸던 해태제과를 인수, 크라운해태그룹을 완성합니다.

죠리퐁, 세월을 이긴 비결은 이것

죠리퐁의 세 번째 벽은 바로 '세월'이었습니다. 씨리얼 제품이 쏟아지면서 스낵 시장에도 참신한 신제품들이 자리잡습니다. 수십년간 판매됐던 죠리퐁은 이제 옛날 브랜드가 됐죠. 소비자들도 지루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시도를 하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브랜드 노후화에 벤치마킹할 제품도 딱히 없었으니까요. 결국 죠리퐁의 매출은 2014년 207억원으로 정점을 찍은 이후 2016년에는 195억원까지 떨어집니다.

고심하던 크라운해태제과는 '콜라보'에서 활로를 찾습니다. 2017년 커피 브랜드 쟈뎅과 손잡고 '죠리퐁 카페라떼'를 내놓습니다. SNS에서 유행했던 레시피를 상품화했습니다. 이어 이랜드의 자연별곡에 '죠리퐁 빙수'를 계절 메뉴로 선보입니다. 지금에야 콜라보가 흔한 크라운 외환 일이지만 당시만 해도 혁신적이었습니다. 이 전략은 '대박'을 칩니다. 이를 계기로 죠리퐁은 젊은 소비자에게 친숙한 제품으로 각인됩니다.

'희망과자 프로젝트'가 담긴 죠리퐁(좌)과 쟈뎅 콜라보 제품(우). /사진=크라운해태

탁월한 마케팅도 빛을 발합니다. 크라운해태제과는 죠리퐁 봉지를 통한 사회적 마케팅을 진행해 왔습니다. 외환위기 시절 '아나바다(아껴쓰고·나눠쓰고·바꿔쓰고·다시쓰자) 캠페인'을 전개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크라운해태제과는 2016년 죠리퐁 450만봉에 실종 아동의 정보를 담는 '희망과자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실제로 이 프로젝트를 통해 잃었던 가족을 찾는 사례가 나오면서 죠리퐁은 주목받게 됩니다.

죠리퐁은 세 번의 시련을 모두 획기적인 방법으로 이겨냅니다. 그리고 죠리퐁은 인기 디저트로 재탄생합니다. 2017년 매출이 206억원으로 반등합니다. 2년 후에는 사상 최고치인 250억원을 달성하죠. 불황이었던 제과업계에소 나홀로 성장합니다. 이런 인기는 지금도 진행형입니다.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계속한 덕분입니다.

다음에 준비한 내용은 죠리퐁 탄생의 비밀을 알려드릴까 합니다. 도대체 죠리퐁 제조 과정에는 어떤 비밀들이 숨어있길래 50년간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는 것일까요. 궁금하지 않으세요? 죠리퐁처럼 바삭하게 알려드리겠습니다.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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